• 부캐의 발견

    실과 바늘로
    일상의 결을 바꾸는 시간

    세아네트웍스 박수정 매니저

    실과 바늘로 일상의 결을 바꾸는 시간

    세아네트웍스 박수정 매니저

    하루 대부분을 사람과 조직을 상대하는 인사 업무를 하다 보면 머릿속이 복잡해지는 순간이 많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대처해야 할 때도, 한꺼번에 여러 정보가 밀려올 때도 있다. 세아네트웍스 박수정 매니저에게 뜨개질은 그런 일상의 과부하를 잠시 내려놓게 해주는 조용한 피난처 같은 존재다. 출퇴근길 지하철에서, 주말 오후 카페나 집에서 그는 손끝으로 고요한 리듬을 가진 또 다른 세계를 짓는다. 일과 삶의 속도를 맞춰 가며 자신만의 균형점을 찾아가는 박수정 매니저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한 코 또 한 코, 집중이 만들어주는 고요한 사생활

    박수정 매니저가 뜨개질을 처음 접한 건 친구가 들고 있던 작은 지갑 때문이었다. 어느 날 친구가 실로 짠 붕어빵 모양의 지갑을 보여주었고, 그 모습이 왠지 모르게 마음을 끌었다. 어디에서 구한 것이냐고 묻자 친구는 자신이 직접 만든 것이라며 다른 작품들도 보여주었다. 그 순간부터 뜨개질에 대한 호기심이 싹트기 시작했다.

    "친한 친구들이 하나둘 뜨개질로 만든 카드지갑 같은 소품을 자랑하더라고요. 그걸 보면서 '나도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어요. 친구들이 학원까지 갈 필요 없다며 유튜브 영상만 봐도 충분하다고 해서, 그냥 무작정 시작했죠. 어떤 실을 사야 하는지, 어떤 바늘을 써야 하는지, 무엇부터 만들어야 하는지도 모른 채로요."

    영상을 보며 한 코씩 따라 하다 보니 어느새 실과 바늘의 움직임이 손에 익기 시작했다. 뜨개질의 규칙은 단순하지만, 그 단순함을 정확하게 반복하기 위해서는 온전히 집중해야 한다. 코를 하나만 놓쳐도 모양이 흐트러지고, 실수가 반복되면 전체 균형이 무너진다. 그래서일까. 뜨개질을 하는 동안은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드는 생각들이 자연스레 멀어진다.

    “인사 업무는 아무리 계획을 세워도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을 때가 많아요. 사람을 상대하는 일이다 보니 정답도 없고요. 예상치 못한 방향에서 문제가 생기기도 하죠. 저는 그런 스트레스를 뜨개질로 푸는 것 같아요. 작품에 몰두하다 보면 생각이 사라져요. 평소 다뤄야 할 정보가 많아 머리가 아플 때도 있는데, 뜨개질을 하면 많은 것이 정리되는 기분이에요. 말 그대로 '쉼'이 되는 거죠."

    업무 특성상 수시로 변화를 맞이해야 하는 날이면 머릿속이 무겁고 복잡해지기 마련이다. 그럴 때 실을 잡고 바늘을 움직이기 시작하면 자연스럽게 호흡이 느려지고 생각이 차분히 가라앉는다. “생각이 너무 많아질 때 오히려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게 해주는 시간이 필요했어요. 뜨개질이 제게 그 역할을 해요.”

    손끝에서 태어나는 완성의 기쁨과 관계의 온도

    출근길 지하철에서도 그는 조용히 뜨개질을 이어간다. 짧은 시간 몇 코밖에 뜨지 못하더라도 괜찮다. 중요한 건 손끝에 집중하는 그 순간이 주는 '비워짐'의 감각이다. 회사에서는 예민하게 반응해야 하는 경우가 많지만, 실과 바늘 앞에서는 오히려 무덤덤하고 느긋한 본래의 자신으로 돌아갈 수 있다. 그 차이가 그의 일상을 균형 있게 만들어준다.

    “처음에는 네잎클로버 같은 작은 소품으로 시작했어요. 그러다 점점 복조리, 에어팟 케이스, 지갑, 최근에는 인형 옷까지 만들게 됐죠. 특히 인형 옷은 귀여움뿐 아니라 섬세한 계산이 필요해 더 깊게 몰입하게 돼요. 사이즈가 조금만 달라도 핏이 맞지 않기 때문에 풀고 다시 뜨는 작업을 여러 번 반복해야 하거든요."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은 산리오 캐릭터 모자다. 양쪽 귀의 대칭이 완벽해야 모양이 제대로 나오기 때문에 시간이 배로 들지만, 그래서 더 보람 있는 작업이었다. 조금이라도 비대칭이면 처음부터 다시 뜨기를 반복했고, 약 두 시간이 지나서야 만족스러운 형태가 완성되었다. 그 과정에서 느낀 성취감은 꽤 컸다.

    "완성한 작품들은 대부분 주변 사람들에게 선물했어요. 친구들이 ‘정말 팔아도 되겠다'고 말해주면 괜스레 뿌듯하더라고요. 지하철이나 카페에서 뜨개질을 하다가 관심을 보이는 분께 간단히 방법을 알려드린 적도 있어요. 취미를 통해 자연스럽게 타인과 연결되는 순간들이 참 따뜻해요.”

    그 작은 순간들이 모이고 쌓여 더 큰 기쁨이 되었다. 그리고 언젠가는 어머니께 카드지갑을 선물하고 싶다는 목표도 생겼다. 어머니가 "나 카드지갑 필요한데"라고 하신 말이 마음에 오래 남았기 때문이다.

    “아직은 사람용 모자나 가방 같은 큰 작품을 도전하기엔 조금 더 준비가 필요하지만, 꾸준히 하다 보면 언젠가는 가능하겠죠. 뜨개질로 만들어지는 건 단순한 편물이 아니라 관계의 온도, 그리고 스스로에 대한 작은 확신인 것 같아요. 그 시간을 쌓아가는 일이 제 삶에도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다주고 있어요."

    취미가 가져온 일과 삶의 느슨한 용기

    뜨개질을 시작한 뒤 박수정 매니저의 일상에는 미묘하지만 확실한 변화가 생겼다. 무엇이든 빨리 끝내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야 한다는 압박에서 조금씩 자유로워진 것이다. 뜨개질은 실수하면 풀면 되고, 다시 시작하면 된다. 이 단순한 원리가 삶의 태도까지 바꿔놓았다. “시간을 들이면 결국 해결된다”는 여유가 생긴 것이다.

    “퇴근 후 하고 싶은 일이 생기니 일에 임하는 태도도 더 긍정적으로 변했어요. 오늘의 업무를 잘 마치면 바늘을 잡을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죠. 취미가 업무 효율을 높이는 뜻밖의 지렛대가 된 셈이에요."

    그는 누구에게나 뜨개질을 추천하고 싶다고 말한다. 실과 바늘만 있으면 시작할 수 있고, 독학으로도 충분히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손에 남는 완성품이 주는 만족감이 크다.

    “취미는 삶에 작은 듯하지만 결코 작지 않은 활력을 불어넣어 준다고 생각해요. 어떤 취미든 불건전하지만 않다면 시도해볼 가치가 있다고 봐요."

    박수정 매니저에게 뜨개질은 단순한 시간 보내기가 아니다. 스스로의 속도를 조절하고 복잡한 생각을 정리하며 하루를 조금 더 여유 있게 바라보게 해주는 삶의 부캐이자 쉼의 기술이다. 그래서일까. 그는 최근 들어 차갑고도 따뜻한, 모순된 열정을 느낀다고 말한다. 실과 바늘로 만들어가는 이 작은 세계가 앞으로도 그의 일상을 단단하게 떠받쳐 줄 것이라 믿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