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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을 향한
    인류의 여정 그리고 미래

    철을 향한 인류의 여정 그리고 미래

    인류와 불

    지금까지 발견된 구석기 시대 유적은 대부분 동굴에서 발견됐다. 박물관이나 인터넷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구석기 시대의 이미지는 대부분 동굴 속 생활을 묘사하고 있고, 우리는 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그러나 사실 동굴에서 산다는 것이 결코 단순한 일은 아니다. 동굴은 비바람이나 추위와 더위를 막아주는 이상적인 주거지였지만, 인간만을 위한 공간은 아니었다. 맹수 또한 동굴을 선호했기 때문이다. 만일 아무런 대비 없이 동굴에서 지냈다면, 호랑이나 늑대와 같은 육식동물들의 공격을 피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결국 동굴은 그 지역 생태계에서 최상위 포식자만이 차지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고고학자인 C.K.브레인은 남아프리카의 한 동굴에서 과거 고양잇과 맹수가 오스트랄로피테쿠스를 잡아먹고 살았던 흔적을 발굴했다. 그런데 더 위 지층에서는 동굴의 주인이었던 호모 에렉투스가 남긴 주거 흔적이 확인된다. 동굴의 주인이 맹수에서 인류로 바뀐 것이다. 이 동굴의 유적들을 면밀하게 분석한 그는 『Hunters or Hunted?』 (사냥꾼인가 사냥감인가?)를 집필하며, 인류가 생태계 정점에 설 수 있었던 이유로 '불의 사용'을 꼽았다. 이렇게 불을 사용하면서 최고의 주거지를 차지하게 된 인류는 이후 동굴에서 안정적으로 살아가며
    구석기 문화를 발전시켜 나갔다.




    토기

    불과 재료: 첫 번째 재료 혁명 - 토기

    인류는 불을 여러 용도로 사용하면서 생태계의 정점에 오를 수 있었지만, 더 큰 도약을 위해서는 재료의 발전이 필요했다. 처음에는 자연 상태의 돌이나 뼈 등을 사용했지만 그것만으로는 한계가 있었고, 그 이상의 발전을 위해서는 자원을 가공해서 재료를 만들어야 했다. 그런데 자원을 재료로 만드는 것은 간단하지 않았고, 특히 좋은 품질의 재료와 도구를 만들기 위해서는 높은 온도의 불이 필요했다.

    인류가 불을 이용해 처음 만든 인공 재료는 토기다. 아마 불 주변의 흙이 시간이 지나면서 단단하게 굳는 현상을 보고 착안해, 토기를 만들기 시작했을 것으로 보인다. 약 2만 년 전 동북아시아 지역에서 토기 제작이 본격화됐고, 이는 농업이나 목축이 시작되는 시기와 정확히 맞물린다. 유적들을 분석해보면 농경 사회로의 전환과 토기 제작은 거의 동시에 이뤄졌음을 알 수 있으며, 이는 토기의 등장이 곧 신석기 시대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시기 대표적인 토기는 우리나라에서도 많이 발견되는 빗살무늬 토기이다. 그리고 이 토기 문명은 유라시아 대륙 전역으로 빠르게 확산되며 유럽에서도 약 1~2천 년 후 나타난다. 유라시아 대륙의 넓이나 자연환경을 고려하면 매우 빠른 속도로 전파된 것으로 볼 수 있으며, 이러한 급속한 확산은 빗살무늬 토기 제작 기술을 보유한 장인들의 이동에 따른 결과로 추정된다. 이들은 점점 불을 다루는 전문가로 성장했고, 처음에는 열린 불에서 토기를 만들다가 가마를 활용해 도기를 만들기 시작했다. 가마를 통해 800도 이상의 고온을 다룰 수 있게 된 인류는 새로운 기술 시대를 열었다.

    불과 재료: 두 번째 재료 혁명 - 청동

    불의 온도가 높아지자 인류는 금속이라는 새로운 재료를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어떻게 인류가 최초로 구리를 제련할 수 있었는지 아직 명확하게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구리 제련에 처음 사용된 광석인 적동광(Cu2O)을 녹이기 위해서는 최소 800도 정도의 온도가 필요하다. 아마도 우연히 노출된 적동광이 산불을 통해 구리로 제련되는 모습을 보고, 인류가 이를 따라했을 가능성이 크다. 금속은 석기에 비해 강도가 훨씬 높아 도구로서의 활용도가 컸으며, 인류는 여러 합금 실험을 거쳐 주석을 첨가한 청동을 만들어냈다. 청동은 돌보다 3배 이상 단단해, 당시 나무를 자르고 다듬는 데 있어 획기적인 도구가 됐다.

    또 하나의 중요한 특징은 재활용 가능성이다. 청동 도구는 망가지더라도 녹여서 다시 사용할 수 있었다. 이 덕분에 도구의 소유권이 사실상 반영구적으로 유지됐다. 금속은 가공 방법에 따라 성질이 달라지며 복잡한 형상도 구현할 수 있어, 청동기 시대 인류는 이전보다 훨씬 정교한 문명을 영위 할 수 있었다.

    불과 재료: 세 번째 재료 혁명 - 철

    인류는 청동을 사용해 매우 다양한 도구들을 만들었고 문명을 발전시켰다. 그런데 청동기 시대가 발전하면서, 인류는 점점 자원의 한계에 직면하게 된다. 초기 청동 문명이 꽃피운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는 적동광이 고갈됐고, 이후 산화물 계열의 구리 광석으로 대체됐다. 그러나 산화물 계열의 구리 광산마저 고갈되자 황화물 계열의 구리 광석을 써야 했다. 처음에는 시행착오가 많았지만 배소 방법을 찾으면서 황화물 광석인 황동광(CuF2S2)을 사용해 구리를 제련할 수 있게 됐다. 바로 이 황동광의 사용이 철 제련 기술을 발견하게 된 계기가 됐다.

    철기 시대 이전에도 인류는 을 사용했다. 다만 이 시기에 사용된 철은 운석으로 날아온 운철이었고, 'iron'이라는 단어도 하늘에서 온 금속을 뜻한다고 알려져 있다. 철을 제련하려면 높은 온도가 필요했기 때문에, 청동기 시대 초기까지는 철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조차 하기 어려웠다.

    그러던 중 황동광을 이용한 구리 제련 기술이 발전하면서 제련로의 온도가 점차 상승했고, 이로 인해 예상치 못한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제련로 온도가 1200도 이상 올라가지 않을 때는 철 성분이 슬래그로 남아 존재 자체를 인식 할 수 없었다. 하지만 노의 온도가 1200도를 넘어가면서 일부 철이 환원되기 시작한다. 문제는 이 온도에서도 철은 슬래그와 결합된 해면철 형태로 남아 분리해내기 어려웠다는 점이다.

    이후 불을 다루는 기술과 연료의 발전으로 제련로의 온도가 1300도 이상 오르게 되면서, 슬래그의 유동성이 향상되고 철이 분리돼 얻어지기 시작했다. 물론 이 시기는 청동 기술이 크게 발달해 있었고, 청동의 품질 역시 매우 뛰어났다. 반면, 해면철 형태의 철을 가공하는 일은 까다로웠기 때문에 철은 큰 관심을 끌지 못했다. 하지만 청동의 자원 문제가 철기 시대로의 전환을 이끄는 결정적 요인이 된다. 구리를 청동으로 사용하려면 다량의 주석이 필요한데, 주석은 당시에도 희귀한 자원이었고, 주요 제국들은 주석 광산과 공급망을 확보하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했다. 하지만 한정된 주석 생산량으로는 늘어난 인구와 수요를 감당할 수 없었고, 이는 결국 인류를 철의 시대로 이끌게 된 것이다.

    철을 제련하기 위해서는 높은 온도가 필요하며 가공도 어렵다. 그럼에도 철의 사용은 인류 문명을 또 다른 단계로 이끌었다. 우선 철은 강도가 매우 뛰어나 청동기 도구와는 비교 할 수 없는 성능을 발휘할 수 있었다. 그리고 철의 또 다른 장점은 자원이 풍부하다는 것이다. 이 덕분에 자원 부족으로 한계에 부딪혔던 청동기 시대와 달리, 철기 시대는 세계 곳곳에서 폭발적으로 발전하는 문명의 수요를 충족하며 발전할 수 있었다.

    특히 18세기 들어 강철이 만들어지기 시작하면서, 인류는 고층 건물과 대형 선박, 대규모 운송 수단과 도로를 건설할 수 있게 됐다. 과거에는 상상할 수 없던 문명의 풍경이 철을 통해 현실이 된 것이다. 그리고 이 문명을 유지하는 데도 막대한 철강이 필요하다.

    미래의 재료

    철강은 인류 문명을 세우고 유지할 수 있게 해준 재료이며, 철강 산업은 이를 가능하게 만든 기반 산업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환경 단체나 여러 정부가 철강 산업을 이산화탄소 배출의 주범으로 지목하고 있으며, 철강 산업의 성장을 제약할 수 있는 다양한 정책도 제안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따라 산업 전반에 위기감이 감지되고 있다.

    그러나 철강의 재료적 특성을 이해한다면, 철강은 앞으로도 인류 문명을 지탱하는 핵심 재료로 남을 수밖에 없다. 철강이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가장 큰 이유는 철강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생산량이 그만큼 많기 때문이다. 오히려 철은 환경적 측면에서 다른 재료보다 훨씬 우수하다. 무엇보다 철은 상대적으로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적은 금속이다. 이산화탄소는 재료 생산 시 투입되는 에너지에 비례해 발생하는데, 철강은 1kg 생산에 약 30MJ의 에너지가 필요하다.

    반면 철강과 경쟁할 수 있는 다른 금속 재료로 구리는 1kg 생산에 80MJ, 알루미늄은 200MJ, 티타늄은 무려 800MJ가 필요하다. 재료별 비강도 등에서 일부 차이가 있지만, 철강은 다른 금속으로 대체하고 그 생산량이 지금의 철강 수준에 도달한다면, 오히려 훨씬 더 많은 이산화탄소가 배출될 수밖에 없다. 또한, 철을 포함한 금속은 재활용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이미 철은 60% 이상 재활용되고 있으며, 이는 모든 구조 재료 중 가장 높은 수치다. 물론 재활용에도 에너지가 필요하지만, 철은 신규 제련의 40% 정도 에너만으로도 재활용이 가능하다. 여기에 재생에너지를 적극 활용한다면, 이산화탄소 배출을 사실상 제로 수준까지 줄일 수 있다.

    인류가 보유한 여러 광물 중 철은 가장 풍부한 자원이다. 자원 고갈에 대한 우려가 적은데다, 재활용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철은 앞으로도 인류 문명의 기반을 이루는 핵심 재료로서 그 역할을 계속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