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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의 추억은 철을 타고
달콤 쌉싸름한
마성의 맛달고나
달콤쌉싸름한 마성의 맛
달고나
윤기 나는 황토색 납작한 과자 위에 세모별 우선 같은 모양이 새겨져 있다. 모양이 화려할수록 오히려 먹기 어렵고, 선명할수록 쉽게 떨어지기도 한다. 표면에 하얀 설탕가루까지 뿌려져 있어야 제맛이다.
정답은 바로 '달고나' 1950년대에 등장해 먹을거리가 변변치 않던 시절, 아이들의 소중한 간식거리로 사랑받았던 달고나는 이제 세대를 나누는 상징이 됐다. 어릴 적 학교 앞에서 달고나를 먹어 본 사람과 드라마 '오징어 게임' 이후 달고나를 처음 맛본 사람으로 말이다. 세대 차이를 넘어 추억을 공유하게 만든, 오늘날 공감의 아이콘이 된 달고나 이야기를 담아본다.
달구나! 달고나!
달고나, 이름부터 참 예쁘다. '달구나'라는 감탄사에서 이름이 유래했다는 설이 있을 만큼, 정말 다디단 과자, 혹은 사탕이다. 매체의 영향이 크지 않던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지역마다 부르는 이름이 제각각이었다. 수도권에서는 '뽑기', 충청도와 전라도에서는 '띠기', 경북은 '국자', 경남은 '쪽자'로 불렀고, 부산에서는 부풀어 오른 모양과 색이 닮았다고 해서 '똥과자'라 부르기도 했다.
한국인들이 어쩌다 달고나를 만들어 먹기 시작했는지, 그 기원은 정확하지 않다. 다만 한국전쟁 당시 부산항으로 들어온 원조 식량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전해질뿐이다. 달고나의 가장 큰 장점은 간편함이다. 설탕과 베이킹소다만 있으면 된다. 설탕에 베이킹소다(탄산수소나트륨)를 넣고 국자에 담아 저으며 가열하면 끝. 캐러멜처럼 녹아들면 철판에 부어 납작하게 누른 뒤 모양틀을 찍으면 완성이다. 1960년대 초반에는 설탕 대신 포도당 블록을 사용하거나, 설탕에 포도당과 소다를 섞어 만들기도 했지만 1960년대 중반 설탕 가격이 낮아지면서 대부분 설탕으로 만들기 시작했다. 달고나가 대중화된 것도 이 무렵부터다.
신기한 것은 재료라고는 설탕과 베이킹소다가 전부인데 맛이 다채롭다는 점. 달기만 한 게 아니라 고소하면서도 쌉싸름하고 약간의 신맛까지 난다. 이는 달고나를 만들 때 설탕이 열에 녹으면서 갈색으로 변하는 '캐러멜화' 반응 때문이다. 이때 생기는 복합적인 향과 맛이 달고나의 매력이다. 특히, 연탄불에 만들면 그 맛이 배가된다. 국자와 연탄불은 말 그대로 찰떡궁합이다.
그 시절, 달달한 추억
"돌덩이 같은 하얀 달고나를 국자에 넣고 연탄불에 둘러앉아 녹여서 거기에 소다를 약간 넣으면 부풀어 오르던 그 하얗고 달콤하고 포슬한 그 맛."
- 소설가 공지영 , 「봉순이 언니」작품 속 식모살이를 하는 주인공 소녀는 달고나를 이렇게 묘사한다. 달고나는 작품 속에서 1960년대 후반의 시대상을 보여주는 매개체로 등장한다. 1980년대생에게도 달고나의 추억은 선명할 것이다. 어릴 적 학교 앞 문방구나 만화가게, 오락실 근처에서 사 먹던 달고나는 100원 이상의 행복을 선사하곤 했다.
친구들과 옹기종기 둘러앉아 하얀 설탕이 녹아 갈색으로 변해가는 모습을 바라보는 시간은 설레는 구경거리였다.삼각형이나 나비, 하트, 십자가, 우산 등 다양한 모양이 찍힌 달고나는 음식이면서 놀잇감이기도 했다. 모양을 깨지 않고 잘 떼어내면 하나를 더 받을 수 있었기에, 초집중하며 바늘로 콕콕 찌르거나 경계선에 침을 묻히는 등 나름의 기술도 존재했다. 어느 동네, 어떤 가게냐에 따라 허용되는 '반칙'의 기준도 달랐다.
그만큼 달고나의 인기가 대단했다는 점만큼은 분명하다.'오징어 게임'이 만든 히트작
달고나는 드라마 '오징어 게임'의 흥행 이후 '힙한 간식'으로 재조명받았다. 사라져 가던 달고나 노점이 다시 거리로 나왔고, 국내의 한 이커머스에서는 달고나 관련 상품의 판매량이 3배 가까이 증가했다. 해외 이커머스 플랫폼에서는 '오징어 게임' 장면과 함께'달고나 만들기 세트'가 판매됐다. K-콘텐츠의 인기가 K-푸드의 인기로 확산된 것이다.
달고나 만들기 키트는 캠핑족 사이에서도 인기 아이템이다. 별이 쏟아지는 캠프장에서 모닥불 앞에 앉아 만들어 먹는 달고나라니, 상상만으로도 낭만적이다. SNS에서는 '#DalgonaChallenge' 해시태그로 달고나 만들기 영상이 유행처럼 번졌다.
달고나는 다양한 음식과의 콜라보로 제2의 전성기를 이어가고 있다. 시작은 커피와 설탕을 물에 넣고 400번 이상 저은 뒤, 우유를 부어 만드는 '달고나 라테'였다. 이후 달고나 밀크티, 달고나 사탕, 달고나 팝콘, 달고나 쿠키, 달고나 건빵 등 수많은 달고나 제품이 등장하며 무궁무진한 변신 중이다.
중장년층에게는 추억을, MZ세대에게는 신선함을 일으키며 제2의 전성시대를 달리고 있는 달고나. 세대와 국경을 아우르는 그 인기는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한편, 올 1월 세계적 권위를 지닌 영국 옥스퍼드 영어사전에 '달고나(Dalgona)'를 포함한 한국어 단어 8개가 새롭게 등재됐다. 사진은 달고나를 "녹인 설탕에 베이킹소다를 더해 만든 한국의 과자"라고 소개하며, “일반적으로 길거리 상인들이 판매하며 납작한 원판 표면에 하트나 별 등을 새긴 모양으로 만든다"고 설명했다.
'오징어 게임' 속 주인공의 절실함만큼은 아니지만, 달고나는 지루한 일상에 짜릿한 재미를 선물한다. 음식과 놀이가 만나는 절묘한 접점, 단언컨대 달고나는 이제 세대를 아우르는 전 세계인의 문화 콘텐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