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이 원하는 방식으로, 원하는 만큼만 만들어야 하는 시대. 철강산업도 다르지 않다. '많이 만들어 잘 파는' 방식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 현실 속에서 세아베스틸의 한 팀이 새로운 해법을 찾았다. 턴디시 하나로 여러 강종을 생산하는 기술, 그리고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손실을 최소화하는 정교한 공정 설계까지. 이들은 대대적인 투자 없이도 연간 67억 원의 원가 절감을 달성하며 '낭비 없는 생산'이라는 새로운 기준을 실현해 냈다. 단순한 기술이 아닌 변화하는 시장에 대응하는 새로운 방식을 만들어낸 세아베스틸 세아업적상 은상 수상팀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다품종 소량생산 시대가 요구한 새로운 해법
공급자 중심에서 고객 중심으로 바뀐 철강산업
철강산업의 질서는 빠르게 변하고 있다. 제품을 생산하면 자연스럽게 판매되던 시절도 있었지만, 지금은 고객이 원하는 사양에 맞춰 생산해야 하는 구조로 바뀌었다. 공급자 중심에서 수요자 중심으로 변한 것이다. 이는 곧 다품종 소량 생산이라는 새로운 과제로 다가왔다.
하지만 제강·연주 공정은 소품종 대량생산에 최적화돼 있다. 강종이 바뀔 때마다 설비 교체가 필요한 기존 방식에서는 생산 효율과 비용이 빠르게 악화한다. 특히 연주 공정에서 사용하는 '턴디시(Tundish)'는 비용 비중이 큰 설비다. 기존에는 강종이 바뀔 때마다 턴디시 교체가 필요했고, 이 과정에서 비용과 시간이 크게 소모됐다.
턴디시 재사용 기술로 생산 방식을 바꾸다
세아베스틸 세아업적상 은상 수상팀은 이 구조 자체를 바꾸는 일에 도전했다. "어차피 해야 하는 변화라면, 위기를 기회로 바꾸자." 이 생각에서 출발한 과제는 기존의 '교체' 개념을 넘어 하나의 턴디시를 사용해 여러 강종을 연속 생산하는 기술로 이어졌다.
결과는 확실했다. 블룸 연주공정 약 52억 원, 빌렛 연주공정 약 8억 원, 재공 관리 약 7억 원 등 연간 약 67억 원 규모의 원가 절감 성과를 만들어냈다. 숫자로도 증명된 성과였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생산 방식 자체를 바꿨다는 점에 있다.
잔강 최소화 기술로 완성한 공정 혁신
혼탕부를 관리하는 새로운 접근
기존 공정의 핵심 원칙은 "섞이지 않게 만든다"는 것이었다. 서로 다른 강종이 섞일 경우, 품질이 떨어지므로, 광종이 바뀔 때마 턴디시를 새것으로 교체하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졌다.
하지만, 이 팀은 질문을 바꿨다. "섞임을 완전히 없앨 수 없는 거라면, 최소화해서 관리할 수는 없을까?" 잔강 최소화 및 턴디시 재사용 기술의 시작은 이 질문이었다. 하나의 턴디시를 최대한 활용해 연속 생산을 이어가고, 강종이 바뀔 때 발생하는 '혼탕부'를 정밀하게 줄이는 방법이다.
데이터 기반 예측으로 손실을 줄이다
이를 위해 세아베스틸 세아업적상 은상 수상팀은 공정의 근본부터 다시 설계를 시작했다. 턴디시 내부 형상을 바꿔 남는 용강량을 절반 수준으로 줄이고, 냉각 구간의 세분화를 통해 혼방부만 선택적 제어가 가능하도록 만들었다. 또한 장기간에 걸친 샘플 데이터 축적을 통해 혼탕이 발생하는 구간을 예측하는 알고리즘도 구축했다.
"6년 동안 데이터를 쌓으며 예측식을 만들었다."라고 이정훈 대리는 이야기한다. 수천 개의 샘플을 직접 채취하고, 분석하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언제, 얼마나 섞이는지'를 계산할 수 있게 됐고, 불가피하게 발생하던 고철 손실을 크게 줄일 수 있었다.
공정이 경험에만 의존하는 시대는 지났다. 데이터와 예측이 결합하며 '섞임을 관리하는 기술'로 진화했다.
빌렛 공정까지 확장한 기술의 가능성
적용이 어려웠던 빌렛 공정의 도전
이번 성과에서 특히 의미 있는 지점은 빌렛 공정이 꼽힌다. 빌렛은 블룸보다 단면이 작고 주입 속도가 빠르며, 생산 조건이 훨씬 까다롭다. 품질 반응 역시 그만큼 예민해 업계에서도 잔강 최소화 적용을 쉽게 시도하지 못했던 영역이다.
김준호 차장도 "처음에는 시도 자체가 어려운 영역이었다."라고 회상한다. 그러나 시장 환경 변화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였다.
새로운 기준과 시스템을 구축하다
팀은 기존 방식을 그대로 적용하는 대신 빌렛에 맞는 기준과 시스템을 새롭게 만들었다.
랩핑다운 기준을 재정립하고, 자동 운전 모드를 개발했을 뿐만 아니라, 품질 리스크 차단을 위한 이중 검증 시스템까지 만들었다. 수차례의 샘플링과 테스트를 거쳐 양산 적용에 성공했을 때, 현장의 반응도 달랐다. 기술의 완성을 체감하는 순간, 단순한 개선을 넘어 새로운 영역을 개척한 결과였다.
협업으로 완성한 다품종 소량생산 사례
이번 과제의 출발점은 현장에서 나온 한 가지 제안에서 출발했다. "턴디시의 높이를 조절해 보면 어떨까." 현장 세미나에서 나온 한 작업자의 아이디어였다. 이를 놓치지 않고 기술로 연결한 것은 팀의 몫이었다. 현장의 경험, 연구 자료, 설비 개선이 맞물리며 하나의 해법으로 완성됐다.
가장 큰 어려움은 의외로 기술이 아닌 '인식의 변화'에 있었다. 과거 잔강 최소화는 손해를 감수하면서도 불량을 막기 위해 쓰이는 '보조적인 기술'이었다. 이를 전략적으로 활용하겠다는 발상이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은 이유다.
"전체 비용 관점에서 이익이라는 점을 설득하는 과정이 가장 어려웠다."라고 조용 대리는 말한다. 수차례의 설명과 검증, 그리고 반복된 테스트를 통해 현장의 신뢰를 얻어야 했다. 결국 기술을 완성한 것은 시스템이 아니라 사람이다.
연주팀, 설비팀, 공정연구그룹, 생산관리팀이 각자의 역할을 넘어 하나의 목표로 움직였고, 현장 작업자들의 경험과 협조가 더해지면서 비로소 의미 있는 결과로 이어졌다.
세아베스틸이 만들어가는 다음 혁신
기술이 만들어낸 변화는 비용 절감에만 머물지 않는다. 일정 규모 이상의 생산이 확보돼야만 효율이 나왔던 기존과 달리 이제는 더 작은 단위의 주문에도 대응할 수 있게 됐다. 고객이 원하는 만큼 생산할 수 있는 구조가 마련됐고, 생산 스케줄의 유연성도 크게 높아졌다.
또 하나의 큰 변화는 안전이다. 고온 환경에서 진행되는 턴디시 교체 작업이 줄어들자, 작업자의 위험 노출도 함께 낮아졌다.
"뜨거운 공정일수록, 안전이 전제되어야 한다."라는 현장의 목소리는 이번 기술 혁신이 지향하는 진정한 가치를 대변한다.
이번 성과는 끝이 아니다. 세아업적상 은상 수상팀은 현재 잔강량을 더 정밀하게 제어하고, 고객사별 요구에 맞춘 품질 기준을 세분화하는 후속 과제를 진행하고 있다. 빌렛 공정에서 혼탕부를 더 줄이기 위한 고도화 작업도 이어지는 중이다.
윤보희 차장은 이번 과정을 이렇게 돌아본다. "개개인의 몰입이 협업으로 이어지고, 그 협업이 문제를 빠르게 해결하는 경험을 했습니다. 회사 생활에서 잊지 못할 시간입니다."
그는 현장을 향해 감사의 말도 전했다. "힘든 과정에서도 단 한 번도 외면하지 않고 함께해 준 현장 구성원들 덕분에 이 성과가 가능했습니다."
쇳물은 여전히 흐르고 공정은 계속된다. 하지만 그 흐름을 만드는 방식은 달라졌다. 낭비를 줄이고, 변화를 받아들이며 새로운 기준을 만들어낸 사람들. 그들의 선택은 세아의 생산을 더 유연하게, 더 단단하게 만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