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개 완결된 형태를 지닌 건축은 내부와 외부를 구분한다. 그러나 안양파빌리온의 경계는 느슨하게 열려 있다. 안양예술공원 입구에 있는 이 건축물은 '머무는 장소'인 동시에 '흐르는 공간'으로 자리한다. 금속과 콘크리트, 그리고 비움의 구조가 형성하는 리듬 속에서 건축은 하나의 덩어리가 아닌 풍경의 일부가 된다.
안양파빌리온, 자연 속에 스며든 알바로 시자의 공간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로 탄생한 안양파빌리온
포르투갈 출신의 세계적인 건축가 알바로 시자(Alvaro Siza)가 설계한 조형예술 건축물인 안양파빌리온은 한때 쇠락했던 유원지를 예술 공원으로 변화시킨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APAP)의 일환으로 세워졌다.
관악산을 배경으로 예술공원로에 접한 긴 대지 위에 자리한 안양파빌리온은 자연환경 속 스며들 듯 놓여 있다. 완만한 곡면 벽체 위, 곡면 지붕이 얹힌 외관, 어느 각도에서 보더라도 동일한 형태로 읽히지 않는 기하학적 형태는 이곳은 '시적인 건축물'로 불리게 한다.
내부와 외부의 경계를 흐리는 건축 구조
회백색의 노출 콘크리트를 사용한 셸(shell) 구조를 가진 내부는 다양한 곡면이 이어지며 하나의 공간을 형성한다. 조명은 최소화하고, 개구부를 통해 들어오는 자연광을 최대한 활용한 실내는 자연의 변화를 온전히 받아들인다. 내부와 외부의 경계가 흐릿한 곳에서 사람들의 시선과 동선은 자연스레 흘러간다.
안양파빌리온 도서관에서 안양예술공원까지 이어지는 예술 경험
예술 작품과 책이 공존하는 안양파빌리온 도서관
안양파빌리온의 별명은 '예술 도서관'이다. 예술 작품이 어우러진 도서관이자 예술 작품 속 도서관이기 때문이다. 내부에 들어서면 정중앙에 '오아시스'라는 이름의 널찍한 쉼터가 있고, 여기에 신혜원 건축가가 제작한 대형 소파가 놓여있다. 그는 흔히 구할 수 있는 골판지를 친환경 옥수수 풀로 이어 붙여 지름 7.2m의 원형 소파를 만들었는데, 종이로 만들어져 약할 것 같은 소파는 사람이 뛰어다녀도 거뜬할 정도로 튼튼하다. 방문객들은 이곳에 편안히 앉거나 누워 책을 읽는다.
최정화 작가의 '무문관'은 이름 그대로 문이 없는 열린 장소다. 길에서 수집한 가구, 합판, 시민들이 기증한 자개장 등을 활용해 만든 설치 작품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의 전통 수납장을 연상케 하는 이 책장에는 시중에 판매하지 않는 책을 비롯해 안양예술공원과 함께한 작가들의 책이 가득하다. 알바로 시자가 기증한 도서들은 국내에서 유일하게 이곳에서만 볼 수 있어 그 가치를 더한다. 넓은 유리창에 드리운 싱그러운 풍경 속에서 천천히 책장을 넘기는 사람들의 표정은 더없이 안온하다.
〈그림자 호수〉, 박윤영
열린 구조로 풍경을 담아내는 오픈 파빌리온과 안양 2019
안양파빌리온을 나선 발걸음은 자연스럽게 안양예술공원으로 향하게 된다. 건축과 예술, 자연이 하나의 흐름으로 연결된 이곳에서는 안양의 정체성을 담은 60여 점의 현대미술작품을 만날 수 있다.
'오픈 파빌리온'은 철을 포함한 금속 프레임 구조로 이뤄진 작품으로, 최소한의 구조만으로 공간을 구성하며 내부와 외부의 경계를 허문다. 금속 구조는 분명 존재하지만, 시야를 가로막지 않으며, 오히려 풍경을 선명하게 드러내는 틀이 된다.
하천으로 다가가면 수백 개의 긴 각목을 일정한 간격의 사선으로 정렬해 완성한 사방 5m 크기의 큐브 형태인 '안양 2019'를 만날 수 있다. 장소성과 시간을 담아낸 각목 사이 틈은 햇살과 바람이 자연스럽게 드나들고, 한쪽에는 문이 있어 내부로 들어가 잠시 머무르며 주변 풍경을 감상하거나 쉴 수 있다.
〈안양상자집 – 사라진(탑)에 대한 헌정〉, 볼프강 빈터&베르트홀트 회르벨트
금속으로 자연을 새롭게 보여주는 반영산수와 오픈 스쿨
물과 반사 효과를 활용한 작품, '반영산수'도 빼놓을 수 없다. 뒤편에는 나무 한 그루가, 앞쪽에는 돌 하나가 놓여있고, 그사이에 흐르는 물을 연상시키는 스테인리스 스틸 구조물이 자리 잡고 있다. 매끄럽게 연마된 스테인리스 스틸 재질이 주변 풍경을 선명하게 투영하고, 불규칙하게 굴곡진 표면은 왜곡된 이미지를 만들어내며 실재와 가상의 경계를 흐릿하게 만든다. 빛과 날씨, 계절의 변화와 보는 위치에 따라 한순간도 정지해 있지 않은 이 풍경은 존재의 실존과 본질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다.
'오픈 스쿨'은 금속 프레임 구조로 이루어진 또 하나의 작품으로 컨테이너를 사용한 다목적 공간이다. 작가는 45도 각도로 절단한 8개의 컨테이너를 결합해 생선 가시를 떠올리게 하는 독특한 형태를 만들었다. 경사 지형을 살린 1층은 계단식 야외 강당으로 조성됐고, 공중에 떠 있는 듯한 2층은 워크숍, 회의, 작가 스튜디오 등으로 활용할 수 있는 다목적 공간이다. 3층으로 가면 안양천을 향해 다이빙대처럼 뻗은 야외 데크를 만날 수 있다. 이곳은 안양천과 주변 마을, 그리고 학운공원 일대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 역할을 한다.
안양예술공원은 자연 그 자체로도 충분한 공간이다. 계곡을 따라 흐르는 물과 바위, 잎이 무성한 나무들은 자연의 시간을 경험하게 한다. 그 길 위에 놓인 예술 작품들은 자연과 대비를 이루면서도 조화롭게 어우러진다. 단단하고 견고한 인공 재료는 오히려 주변 풍경을 더욱 또렷하게 드러내는 요소가 된다.
자연과 사람을 연결하는 공간
〈지상의 낙원〉, 문주
안양파빌리온은 '무엇을 보여줄 것인가'가 아닌 '어떻게 경험하게 할 것인가'를 치열하게 고민한 결과물에 가깝다. 노출 콘크리트와 금속, 그리고 비워낸 구조가 건축을 단절된 구조가 아닌 소통과 연결의 매개체로 바라보게 만든다. 여기서 우리는 자연과 예술을 마음껏 향유하고 생각의 틀을 넓혀간다.
안양파빌리온을 나서며 좋은 공간은 오래 머물게 하는 것이 아닌 다시 돌아오고 싶게 만드는 곳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렇기에 안양파빌리온은 자연과 사람 사이에 끊임없이 소통하며 언제까지나 그 자리를 지킬 것이다.